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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한일청구권협정 헌법소원 각하

헌법재판소는 23일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대한 헌법소원을 각하했다. 헌재는 “한일청구권 협정은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지원금 지급과 관련한 재판에 직접 적용되는 법률이 아니어서 심판청구가 부적법하다”고 밝혔다. 헌재는 이날 함께 선고된 강제징용 피해자 지원과 관련한 법률(‘태평양전쟁 전후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법률’,‘대일항장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미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의 제 조항은 모두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한일청구권협정에 대한 헌법소원의 청구인인 이윤재씨의 아버지는 군무원으로 일본에 강제징용됐다가 사망해 돌아오지 못했다. 이씨는 2007년 강제징용 피해자 지원법이 제정되자 아버지가 일하고도 받지 못한 돈 5828엔을 지급해 줄 것을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지원위원회’(위원회) 에 신청했다. 위원회는 강제징용 피해자 지원법의 규정에 따라 45년 해방 당시 1엔을 2005년 기준 2000원으로 환산해 1165만6000원의 지원금을 지급키로 결정했다. 그러자 이씨는 “미수금의 현재가치를 반영하지 못해 부당하다”며 위원회에 재심의를 요구했다가 기각당하자 행정법원에 재심의 거부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재판 진행중 이씨는 65년 6월22일 체결한 한일청구권협정과 강제징용 피해자 지원법의 관련 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청구서에서 이씨는 한일청구권협정과 관련해 “협정 2조 1항과 3항에 따르면 협정일 이전에 사유로 인한 어떤 청구권도 주장할 수 없도록 돼 있어 재산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강제징용 피해자 지원법에 대해선 “1945년과 2005년은 금값 기준 14만배, 쌀값 기준 47만4206배의 화폐가치 차이가 있다”며 “정당한 보상을 가로막아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헌재는 강제징용 피해자 지원과 관련된 법률에 대해 이들 법률에 따른 위로금이나 지원금은 "강제동원 희생자와 그 유족들에게 인도적 차원에서 지급되는 시혜적 성격의 급여"라며 "따라서 그 대상을 대한민국 국적을 지닌 사람으로 제한한다거나, 급여의 산정방식이 화폐가치를 완전하게 반영하지 못한다고 해서 지나치게 자의적인 입법이라거나 평등원칙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임장혁 기자·변호사

2015-12-23

미국 거주 위안부 피해자 박유년 할머니 별세

미국에 거주하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박유년 할머니가 93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박 할머니의 별세로 한국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8명 가운데 생존자는 47명으로 줄었다. 올해 들어서만 8명이 숨졌다.  9일 여성가족부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에 따르면 박유년 할머니는 지난 7일 오전 11시25분(현지시간)쯤 애리조나주에 있는 양아들의 집에서 숨을 거뒀다. 박 할머니는 폐와 심장에 물이 차는 증세를 보이며 올해만 네 차례 입원하는 등 위험한 고비를 넘겨 왔다. 병원에서 치료받던 박 할머니는 최근 병세가 깊어져 2주 전 아들 집으로 옮겨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박 할머니는 19세였던 1941년 친구와 함께 부산에 놀러갔다가 일본군 간호사가 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한국 여성 6명과 함께 일본 관동지역으로 동원돼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다. 이후에도 싱가포르로 강제 이송돼 위안부 생활을 하다 45년 일본 패전 후 고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귀국 후 부산에서 생활하다 경기도 파주로 옮겨 산나물 등을 팔며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93년 8월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된 박 할머니는 2007년부터 지금까지 미국에서 생활해 왔다.  발인은 12일 오전으로, 고인은 유족 자택과 가까운 공원 묘지에 안장된다. 정대협 관계자는 “70주년 광복절을 며칠 앞둔 시점에 박 할머니가 돌아가셔 안타깝다”며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책임있는 모습을 보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2015-08-10

위안부 할머니 그림 전시회

뉴저지주 유니온시티에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로하는 전시회가 열린다. 광복 70주년과 유니온시티 위안부 기림비 건립 1주년을 기념해 오는 14일부터 9월 15일까지 한 달간 유니온시티 윌리엄 무소 문화센터(420-15스트리트)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 주제는 ‘평화와 자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기억하고 위로하기 위한 전시로 종군위안부 초상화가로 저명한 스티브 까발로 작가 등의 작품들이 전시된다. 특별히 초·중·고 어린이들이 그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그림도 함께 놓인다. 이번 전시회를 이끈 허드슨문화재단(대표 김자혜) 주최의 ‘평화와 자유’ 어린이 미술 대회 입상작이다. ‘평화와 자유’ ‘광복’이란 주제에 더해 학생들이 인식하는 여성 인권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통해 그린 작품들이다. 전시회 오프닝 리셉션은 오는 14일 오후 7시에 전시회장에서 진행된다. 같은 행사의 일환으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위한 헌정 음악회도 열린다. 오는 15일 오후 6시 유니온시티 퍼포밍아트센터(2500 케네디불러바드)에서 열리며 유니온시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한·중·미 음악 대회에서 입상한 예비 음악가들이 협연을 펼친다. 전시회와 음악회는 모두 무료다. 이조은 기자 lee.joeun@koreadaily.com

2015-08-07

3-A 프로젝트 백덕열·심용석씨 “위안부 문제 알리러 미국왔습니다”

한국 독도경비대 출신으로 위안부 문제를 현지사회에 알리기 위해 미 대륙횡단에 나선 두 청년이 시카고에 도착했다. 백덕열(22·경희대 체육학과)씨는 함께 독도경비대에서 군 생활을 한 심용석(22·인천대 중어중문학과)씨와 동해바다를 보며 제대 후엔 뜻 깊은 일을 해보자고 결심했다. 그리고 지난 2월 제대한 백씨와 심씨는 지난 6월 20일 미 대륙횡단을 위해 한국을 출국한 뒤 LA를 시작으로 라스베가스, 애리조나, 뉴멕시코, 텍사스, 오클라호마, 캔자스, 미주리, 일리노이를 거쳐 동부 뉴욕까지 총 6천여km 거리를 자전거로 횡단하는 ‘3A-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들은 LA출발 후 45일 만인 지난 4일 시카고에 도착했다. 7일 본사를 방문한 백덕열(사진) 씨는 “용석이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소녀이야기’를 보고 이 문제에 대해 알리고 싶다고 했을 때 솔직히 깊게 아는 문제가 아니어서 망설여지기도 했다. 하지만 직접 나눔의 집을 방문했을 때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는 꼭 이 프로젝트를 시행시켜야한다는 마음이 굳건해졌다”며 “일본 정부는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부정하며 또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피해자 할머니들을 단순 인신매매의 희생양으로 언급하는 일본 정부를 보며 참을 수 없었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무엇을 하지 않으면 피해자 할머니들은 우리를 기다려주시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번 프로젝트가 일본 정부의 시인과 사죄를 받을 수 있는데 힘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미국 횡단의 이름을 ‘3-A 프로젝트’로 결정한 이유도 일본 정부가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를 인정(Admit)하고, 사과(Apologize)하고, 피해자 할머니들과 함께 동행(Accompany)하자는 취지다”며 “국제적인 여론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미국에 오기로 결정했고 또 무모할 수도 있는 라이딩을 결심했다. 우리가 가진 열정과 할머니들의 진심을 자전거에 싣고 달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백 씨와 심 씨는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주말마다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지난 겨울 졸업철에는 꽃을 판 돈으로 항공권을 구입했다. 재학 중인 경희대와 인천대 교수들로부터 도움을 받기도 했고 또 친구들과 함께 기금 운동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기업 협찬과 한류문화인진흥재단을 통해 소셜펀딩을 하는 등 이번 프로젝트의 기금을 모으기도 했다. 또 체력을 점검하고 팀워크를 위해 5월부터 인천부터 부산까지 자전거 라이딩을 하고 미국인들에게 위안부 실상을 알리기 위해 역사 내용을 담은 구절을 외우고 또 인쇄물을 준비했다. 미국에 도착한 뒤에는 들리는 도시마다 시민들을 상대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를 알리고 LA를 시작으로 시카고, 워싱턴, 뉴욕 등에서 집회를 준비했다. 이들은 8일 낮 12시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며 이후 한인 축제로 이동,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릴 예정이다. 백 씨는 “갓길엔 동물들 시체도 많고 터진 타이어 잔해물들, 유리 파편들이 많아서 펑크가 자주 난다. 하지만 이번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트리플 A는 마이너리그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야구를 뜻한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마이너에 있는 위안부 문제를 전 세계에서 메이저 이슈로 끌어올리는데 힘이 되고 싶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께서 살아계시는 동안 일본 정부의 시인과 사죄를 받을 수 있도록 한인들도 함께 노력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페이스북(www.facebook.com/bikeforcomfortwomen) 김민희 기자 kim.minhee@koreadaily.com

2015-08-07

홀로코스트 박물관서 위안부 전시회 연다

내년 3월 롱아일랜드 나소카운티에 있는 홀로코스트박물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특별 전시회가 열린다. 뉴욕을 방문하고 있는 나눔의 집 관계자들에 따르면 스티븐 마커위츠 홀로코스트 센터장은 6일 센터를 찾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강일출(87)할머니와 나눔의 집 관계자들 면담에서 "세계 각지의 인권침해를 알리는 각종 전시와 강연이 센터에서 이뤄지고 있다"며 "내년 3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를 주제로 특별전을 하는데 협조를 부탁한다"고 밝혔다. 홀로코스트 박물관은 나소카운티 정부의 소유 건물인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센터 내에 있다. 이에 강 할머니는 "우리도 유대인처럼 전쟁 피해자다.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문제는 독일의 사죄로 해결됐지만 위안부의 경우 일본 정부가 사죄하지 않아 문제 해결이 안됐다"며 사죄하지 않는 일본 정부를 강력 비판한 뒤 "홀로코스트 센터에서 일본의 범죄 행위에 대해서도 더 많이 다뤄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홀로코스트 센터는 뮤지엄 형태로 운영되며 해마다 수많은 학생들과 일반 시민들이 찾는 곳이다. 홀로코스트 센터에 최초로 마련되는 위안부 특별전시관은 인류 최악의 전쟁 범죄로 꼽히는 홀로코스트 사건과 일본군 강제위안부 이슈가 동등한 사안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의미를 담게 된다. 특히 일본이 아직까지 공식 인정과 배상을 외면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해 미 주류사회에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유대인 커뮤니티와 함께 공조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전망이다. 이날 홀로코스트 센터 관계자들과 강 할머니는 나소카운티 아이젠하워 공원 베테란스 메모리얼에 있는 위안부 기림비를 찾아 참배했다. 강 할머니는 이 자리에서 "미국에 더 많은 위안부 기림비와 소녀상이 세워지기를 희망한다"고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강 할머니는 7일 2013년 뉴욕주의회에서 위안부 결의안 통과에 주도적 역할을 한 찰스 라빈(민주.13선거구) 주하원의원 10일에는 그레이스 멩(민주.뉴욕 6선거구) 연방하원의원과 면담을 하며 일본의 사죄 촉구를 위한 활동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서승재 기자 seo.seungjae@koreadaily.com

2015-08-06

시카고시 위안부결의안 채택 관련 “주요 도시 중 첫 결의안 통과 큰 의미”

시카고 시의회가 미국내 주요 도시로는 처음으로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본지 6일자 1·2면 보도>하자 한인들이 일제히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특히 위안부기림비건립위원회에서는 향후 부지 선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기대하고 있다. 시카고 시의회가 지난달 29일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킨 것에 대해 대다수의 한인들은 한인사회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다. 위안부기림비 건립에 동참한 한인들도 크게 반겼다. 위안부기림비건립위원회 루시 백 위원장은 “주의회와 함께 시의회에서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됐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우선 미국 주요 대도시 시의회 차원에서 결의안을 채택한 것은 시카고가 처음일 뿐만 아니라 대도시에서 위안부 관련 이슈를 알릴 수 있다. 아울러 부지 선정에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백 위원장은 이어 “아직도 위안부 이슈에 대해서 반대하는 한인들이 꽤 많다. 어두운 과거 역사를 왜 꺼내느냐는 것이 그분들의 입장”이라며 “하지만 위안부 문제는 한국과 일본간의 문제뿐만 아니라 보편적인 인권 침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많은 한인들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건립추진위원회는 현재 5만달러 이상을 모금했고 건립 후 운영비용까지 포함해 7만달러 정도가 필요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건립 장소는 시카고와 서버브를 대상으로 물색하고 있고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다. 알바니팍커뮤니티센터의 이진 디렉터도 “결의안이 통과될 수 있었던 것은 한인사회와 친밀한 마가렛 로리노 시의원이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한인사회 주요 이슈를 제기하고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선출직 공직자와의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위안부기림비건립위원회에 기금을 전달했던 시온회의 김문주 회장도 “시의회가 결의안을 통과시켰다는 것은 전체 한인사회가 반길만한 일이다. 위안부 피해를 겪었지만 용기를 내어 증언을 하신 할머니들의 뜻이 널리 알려진 것 같아 기쁘다. 위안부기림비도 하루빨리 건립되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개인 자격으로 기금을 납부했던 이신애씨도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우리 어머니 세대의 분들이 피해를 겪어야만 했던 위안부의 역사를 언급하는 것을 꺼리는 분들도 계시지만 아이들에게는 정확한 역사를 알려야 한다. 이번 결의안에서 이같은 점을 분명하게 지적했다. 다음 세대에게 전해서 나라의 힘이 약했기 때문에 당하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춘호 기자 polipch@koreadaily.com

2015-08-06

위안부 결의안 모두 3차례 통과

시카고와 일리노이에서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먼저 지난 2013년 5월13일 주하원 결의안(HR0365)이 통과됐다. 이어 일년 뒤인 2014년에는 주상원 결의안(SR1073)이 채택됐다. 주의회에서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될 수 있었던 것은 한인들의 노력도 있었지만 다니엘 비스 9지구 일리노이주 상원과 일라인 네크리츠 일리노이주 57지구 하원 등 지한파 의원들의 노력이 컸다. 비스 의원은 한인후원회가 결성돼 한인단체와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한인사회 이슈에 큰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네크리츠 의원 역시 중앙일보가 주최한 위안부 연극 ‘봉선화’를 직접 관람하고 초청받아 한국을 방문하는 등 한인사회와 친밀함을 과시하고 있는 대표적인 의원이다. 사실 이번 시카고 시의회가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한 것은 두 번째 시도였다. 2013년 마가렛 로리노 시의원이 에드워드 버크 의원 등과 함께 상정했으나 회기 중에 통과되지는 못했다가 2년 만에 다시 결실을 보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통과되면서 광복 70주년이라는 의미가 크게 부각됐다. 세계2차대전 종전 기념과 함께 단순히 한국과 일본간의 감정적인 차이를 드러내기 보다는 인신매매 등의 인권 침해가 자행된 점과 이를 잊지 않으려고 하는 한인들의 노력이 결의안 내용 곳곳에 들어가 있다. 이는 이미 두 차례나 결의안이 통과되는 과정에서 한인사회가 인권 이슈로 접근하면서 인식 확산과 재발 방지를 위한 교육에 중점을 둔 것이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 박춘호 기자 polipch@koreadaily.com

2015-08-06

위안부 참상 미국에 직접 알린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강일출(87.사진) 할머니가 제70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뉴욕.뉴저지를 방문한다. 한국 '나눔의 집'에 따르면 4일 뉴욕에 도착하는 강 할머니는 5일 오프브로드웨이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컴포트우먼'을 관람한 후 6일 뉴저지 유니온시티와 버겐카운티 위안부 기림비를 찾을 예정이다. 7일에는 2013년 뉴욕주의회에서 위안부 결의안 통과에 주도적 역할을 한 찰스 라빈(민주.13선거구) 주하원의원과 면담이 잡혀 있다. 토니 아벨라(독립민주컨퍼런스.11선거구) 주상원의원과 라빈 의원이 공동 발의한 결의안은 "일본 정부에 의한 위안부 제도는 20세기 최대의 인신매매로 집단강간.강제낙태 등 그 잔인함과 규모에서 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고 많은 여성을 장애와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강력히 규탄하고 있다. 강 할머니는 8일 위안부를 주제로 미술 활동을 펼치고 있는 스티브 카발로 팰리세이즈파크도서관 큐레이터 10일에는 그레이스 멩(민주.뉴욕 6선거구) 연방하원의원을 만날 계획이다. 배성진 나눔의 집 뉴욕지부장은 "강 할머니의 이번 뉴욕 방문은 한인들에게 위안부 피해자들의 실태를 제대로 알리기 위한 것"이라며 "광복절에 즈음한 것이라 더욱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서승재 기자 seo.seungjae@koreadaily.com

2015-08-03

[박경자 칼럼] 위안부 할머니의 한, 우리가 풀어드리자

‘가시리 가시리잇고/나난 버리고 가시리 잇고/날러는 어찌 살라하고/나난 버리고 가시리 잇고’ ‘가시리’는 한의 노래다. 강제로 딸을 빼앗기고 한 많은 설움을 산 부모가, 차마 딸을 못잊어 울부짖는 노래다. 이 노래의 주인공인 위안부 피해자 어머니가 조국 해방 70년만에 처음으로 애틀랜타를 방문했다. 피눈물 나는 한의 세월을 살아오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내 조국의 어머니 강일출 어머니가 지난 1일 애틀랜타에 오신 것이다. 강일출 어머니는 2일 애틀랜타한인회관에서 2차대전중 자신이 겪은 한의 역사에 대해 생생히 증언했다. 어머니의 눈물겨운 증언을 듣고 나 역시 가슴 떨린다. 1943년, 조국이 아직 일본의 식민지였던 시절, 일본군은 한반도에 ‘처녀공출 명령’을 내렸다. 조선 처녀를 하루에 50명씩 끌고 갔다. 17살 강일출 소녀를 발견한 일본군인들은 우리 조국의 소녀들을 강제로 엄마품에서 빼앗아갔다. 딸을 빼앗긴 어머니의 애끊는 한의 소리를 멀리한채, 강 어머니는 어디로 끌려가는줄도 모르고 군용트럭에 실려 몇날을 어디론가 길을 떠났다. 어느 군부대의 어두컴컴 막사에 도착하자, 조선 처녀들은 수십명의 일본군들에게 밤새도록 성노예로 짓밟히고 매를 맞았고, 길가에 버려졌다. 우리 조국 어머니들은 인간 이하 일본군들의 만행에 대해 세계를 향하여 이렇게 외친다. “일본은 망한다. 홀로코스트보다 더 무서운 죄악을 저지른 나라 일본은 망한다”고 통한의 눈물을 흘리셨다. 내가 세상에 태어난 그해, 조국은 통일을 맞았다. 그래서 위안부 어머니 이야기는 내 조국 어머니 이야기이기도 하다. 죽음보다 더 무서운 아픔의 세월속에서 길에 버려진 내 조국의 어머니들은 간신히 살아남았다. 차마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하는 통한의 70년 세월을 살았다. 하지만 뻔뻔스러운 일본은 어머니들에게 아직 사과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 지금 위안부 어머니들 중 살아계신 분들이 몇분 남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나는 몇년전 이미 고인이 되신 위안부 피해자 황금주 할머니를 애틀랜타 우리집에 모신 적이 있다. 황 할머니 증언에 의하면, 위안부로 끌려간 후 수많은 일본군에 짓밟혀 병에 걸린 그녀는 길에 내버려졌다. 황 할머니 친구들중에는 정신이상으로 길을 헤매다 자살하는 소녀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도 수없이 자살을 시도하며 길을 헤멨다. 그러다 일본이 항복하고 조국이 통일을 맞이했다는 감격적 소식을 듣고 “죽어도 내 조국에서 죽자. 이대로는 죽을수 없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황 할머니는 몰래 모아둔 돈으로 밀항선을 타고 조국으로 돌아왔다. 고향에 돌아갔으나 부모님도 화병으로 돌아가시고, 동네 사람들조차 “위안부”라고 손가락질하며 외면을다. 황 할머니는 그날밤 다시 보따리를 들고 밤차로 상경하여 몇날을 굶으며 죽을 날만 기다렸다. 하도 배가 고파서 서울역 근처 식당에 들어가 끼니를 얻어 먹고 주인에게 사정했다. 그렇게 부엌에서 모든 궂은 일을 하며 몇십년을 숨어 살았다고 한다. 황 할머니는 숨어산 세월속에 백발이 되자 “이대로는 죽을수 없다. 일본의 만행을 폭로하자”고 결심했다. 그래서 일본 대사관 앞에서 ‘일본은 사과하라’는 깃발을 들고 죽는 날까지 시위하다 몇년전 세상을 떠나셨다. 내가 애틀랜타 집에 황 할머니를 잠시 모실 때, 할머니는 “따뜻한 잠자리와 극진한 대접을 평생 잊을수 없네”라며 주먹같은 눈물을 흘리셨다. 그 눈물이 지금도 내 가슴을 적신다. 나도 “어머니, 우리가 그 한을 풀어드릴께요”라며 굳게 약속했다. 내 조국의 어머님 강일출 할머니께도 똑같은 약속을 해본다. 우리는 강 어머님을 모시고 미국의 남과 북, 전쟁의 역사가 숨겨진 스톤마운틴을 구경시켜 드렸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 이야기도 들려드렸다. 조국 광복 70년 한의 세월, 그러나 우리는 정신대 어머니들의 한을 아직도 풀어드리지 못했다. 지구별에 가장 잔인한 나라, 일본의 아베 수상은 아직도 정신대 문제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있다. 독일 여성 총리 메르켈은 틈만 나면 ‘홀로코스트’ 만행에 대해 무릎꿇고 용서했다. 세계인들은 강철같은 메르캘 총리 가슴속 깊은 샘물같은 지혜, 따뜻한 인간애를 보았다. 지금이라도 일본 아베 총리는 우리 조국 어머니들의 한맺힌 비극, 정신대 문제에 대해 반드시 사과해야 한다. 한국 어머니를 비롯한 세계 20만여성들에게 강제로 성학대를 저지르고 여성 인권을 짓밟은 일본 정부는 무릎꿇고 온 인류 앞에서 지금 사죄해야 할 것이다.

2015-08-03

위안부 피해자 강일출 할머니 "죽어서 엄마아빠 볼까봐 눈물만 흘려"

"내 고향은 경북 상주군 화동면…. 그곳에서 17살 처녀였던 저는 일본군 순사에게 끌려갔어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강일출(87) 할머니가 겪은 참상을 처음 접한 애틀랜타 한인 동포들의 가슴은 순간 먹먹해졌다. 강할머니는 2일 애틀랜타한인회관에서 위안부체험 증언행사를 갖고 자신이 직접 겪은 참상을 담담하게 전달했다. "1943년, 다른 여자들과 기차를 타고 머나 먼 중국의 길림성으로 보내졌지요. 그곳의 일본군 위안소에서 3년간 위안부로 생활했죠. 너무나 고통스러워 일본군에게 저항도 해보고, 눈물로 호소도 했지만 소용없어요. 일본 군인들은 '네가 말을 잘 들어야 엄마 아빠를 다시 볼 수 있다'고 말했지만, 저는 죽어서야 부모님을 다시 볼 수 있을거라는 생각에 하염없이 울기만 했지요." 강할머니는 2차대전 종전 직후 일본군의 위안부 학살 사실도 증언했다. 전쟁이 끝나고 일본군이 위안소를 운영했다는 증거를 없애기 위해, 일본 군인들은 위안부들을 불태워 죽이기도 했다. 운좋게 살아남은 강 할머니는 중국에 남아 생활하다가, 1990년대 귀국해 경기도 광주시 소재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여기 미국 애틀랜타 땅에서 교민들이 자유를 누리며 잘 살고 있다는 걸 보기만 해도 뿌듯하고 기분이 좋아요. 우리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어요. 여러분들께서 저같은 사람의 피해 사실을 미국에 널리 알려주세요." 강할머니는 마지막으로 "애틀랜타 한인사회도 위안부 소녀상 기념비 건립에 앞장서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위안부로 끌려가 겪은 피해를 국제사회에 알리고자 방미한 강일출 할머니는 첫번째 일정으로 2일 애틀랜타 한인회관을 방문해 일제시절 군 위안부로 끌려가 겪었던 참상을 증언했다. 지난 1일 애틀랜타에 입국한 강 할머니는 나눔의 집 관계자와 함께 10박 12일간 미국 전역을 돌며 위안부 실태를 증언하고 있다. 강 할머니와 함께 동행한 안신권 나눔의 집 소장은 "일본은 UN등 국제기구들로부터 전쟁중 범한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질타를 받고 있지만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며 "하지만 미주 한인들이 주도한 위안부 소녀상 기념비 건립에는 무척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방문을 계기로 애틀랜타와 뉴욕 교민사회가 위안부 소녀상 건립에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오영록 애틀랜타 한인회장도 화답했다. 그는 "강 할머니의 방문을 계기로 동포들과 힘을 합쳐 애틀랜타 한인회관에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를 세우고자 한다"며 "위안부 소녀상도 마틴 루서 킹 목사의 기념관이 있는 애틀랜타 중심가에 건립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나눔의 집 측은 이날 위안부를 소재로 한 영문 동화책 'Touch me not'을 동남부한국학교 협의회 측에 전달했다. 나눔의 집 애틀랜타 지부장에는 최현경씨가 임명됐다. 조현범 기자

2015-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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